파스타는 소스재료보다 면발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자주 접하는 건 스파게티나 펜네 정도일 뿐인데, 이탈리아에는 지역과 전통에 따라 아주 다양한 파스타 면이 존재합니다. 형태와 굵기, 질감에 따라 어울리는 소스와 조리법도 달라지죠. 실제로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소스보다 먼저 어떤 면을 삶을지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파스타 면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 형태와 질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요리가 나오기 때문이죠. 오늘은 대표적인 파스타 면 종류를 소개하고, 각각의 파스타에 잘 어울리는 요리도 함께 소개해드릴게요. 파스타 면만 제대로 골라도 요리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니까요. 잘 따라와 주세요!
얇고 긴 클래식한 면발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스파게티
먼저 ‘긴 면’부터 살펴보면,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익숙한 스파게티(Spaghetti)입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이 면은 토마토소스, 오일 소스, 크림소스 등 어떤 스타일과도 잘 어울리는 범용성 높은 파스타입니다. 제가 이탈리아에 도착하고 초창기에 알던 분은 다른 파스타는 절대로 안 드시고 스파게티만 요리해 드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탈리아 어느 지역을 가도 스파게티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무한한 응용이 가능한 면이기도 하죠. 스파게티는 중간 정도의 두께로 다양한 소스와 잘 어우러지는데, 특히 토마토소스나 오일 소스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예를 들어, 신선한 토마토와 바질, 마늘만으로 만든 스파게티 알 포모도로(Spaghetti al pomodoro)는 단순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어 이탈리아 가정식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죠.
카펠리니
여기서 조금 더 얇아진 것이 카펠리니(Capellini)라고 불리는 면인데요. 일명 엔젤헤어라고도 불리는 우리나라의 중면과 비슷한 이 면은 굉장히 가늘고 부드러워서 조리 시간도 1-2 분 정도로 짧습니다. 가벼운 오일 소스나 레몬향이 들어간 해산물 소스와 잘 어울리며, 여름철엔 차갑게 만들어 ‘냉파스타’로 즐기기도 좋습니다.
부카티니
반대로 스파게티처럼 보이지만 중심에 구멍이 뚫려 있는 부카티니(Bucatini)가 있습니다. 스파게티처럼 생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어 소스가 면 안으로도 스며들어요. 토마토 베이스의 아마트리차나 소스처럼 진하고 짭조름한 맛과 잘 어울립니다. 면 안으로 소스가 스며들어 풍미를 배가시키죠.
넓고 납작한 면발로 만드는 깊은 맛
탈리아텔레
‘넓은 면’ 계열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집니다. 넓은 면발은 묵직하고 진한 소스를 흡수하기에 적합한 파스타죠. 그 대표가 바로 탈리아텔레(Tagliatelle)입니다. 탈리아텔레는 생면과 건조면 모두 인기가 좋은데 주로 계란 반죽으로 만들어 색이 노랗고 질감이 부드러운 게 특징이에요. 이탈리아 북부에서 즐겨 먹는 라구 소스, 특히 볼로네제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죠. 고기를 오래 끓여 만든 풍부한 소스가 면에 고루 스며들어, 한 입 먹는 순간 이탈리아의 겨울 식탁이 떠오를 거예요. 향수를 부르는 면발이랄까요?
파파르델레
그보다 더 넓고 씹는 맛이 있는 면을 찾는다면 파파르델레(Pappardelle)가 있습니다. 파파르델레는 사슴고기나 멧돼지 라구처럼 묵직한 소스를 받아내기에 적합한 면입니다. 면 자체가 두툼해서 씹는 맛도 아주 뛰어나고, 남부나 산악 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조합입니다. 육중한 라구 소스와 잘 어울리기 때문에, 특별한 날 정성 들인 파스타를 만들고 싶다면 파파르델레가 제격이겠죠.
라자냐
라자냐(Lasagne)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라자냐는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이탈리아 가정식 파스타죠. 납작한 사각 형태의 라자냐 면은 파스타라기보다 하나의 요리처럼 여겨지죠. 라구 소스와 베샤멜소스, 그리고 풍부한 치즈를 층층이 쌓아 오븐에 구워내면, 집 안 가득 퍼지는 냄새만으로도 식욕이 폭발합니다. 특별한 날 가족과 함께 나눠 먹기에도 안성맞춤인 가장 ‘따뜻한’ 파스타 중 하나입니다.
짧고 독특한 면의 숨은 재미
다음은 ‘짧은 면’입니다. 길고 납작한 면이 부담스러울 때, 짧고 개성 있는 파스타 면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짧은 파스타 면은 그 자체로 재료와 소스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합니다. 긴 면처럼 흘러내리거나 감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입안에서 더 집중적으로 식감을 느낄 수 있고, 한 숟갈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는 그 자체로 완성된 한 입을 선사합니다. 짧고 독특한 파스타 면발들은 그 자체로 개성과 역사를 담고 있어, 요리에 스토리텔링을 더해줍니다. 스파게티 하나로는 다 담지 못할 맛의 디테일이, 이 짧은 면들 속에 꽉 차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지역마다 다른 파스타 면을 만들고, 그것에 딱 맞는 요리법을 물려주었는지도 모릅니다.
펜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펜네(Penne)’입니다. 짧고 끝이 비스듬히 잘린 이 면은 안쪽이 비어 있고 겉에 미세한 홈이 있어 토마토소스가 구석구석 배어들기 좋습니다. 펜네 알 아라비아타처럼 매콤한 맛의 토마토소스와 만나면, 강렬하면서도 맛깔난 파스타 한 접시가 완성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매력을 지닌 ‘리가토니’는 펜네보다 더 크고 통통한 느낌입니다. 겉면의 골이 더 깊어서 진한 크림소스나 고기 소스를 듬뿍 머금기 좋고, 특히 오븐 요리에 잘 어울립니다.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가지, 토마토, 치즈를 함께 넣어 자주오븐에 구워내는 파스타 알 포르노에 사용하는데 이 요리는 잔칫날 빠지지 않는 가정식이기도 합니다.
파르팔레
파르팔레(Farfalle)는 마치 나비 모양처럼 생겨 비주얼부터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에게 인기 많고, 크림소스나 연어, 완두콩과 함께 가볍게 조리하기 좋습니다. 형태가 넓고 가운데가 오목해서 재료가 적당히 묻어나면서도 식감이 다채롭습니다. 봄철에는 파르팔레에 레몬과 채소를 넣은 샐러드 스타일의 파스타로도 많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오레키에테
한편, 지역 특색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면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풀리아 지역의 오레키에테(Orecchiette)는 이름 그대로 ‘작은 귀’를 닮은 모양의 파스타예요. 표면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 브로콜리나 라파 같은 잎채소와 먹는 버전이 가장 유명하죠. 특유의 오목한 모양 때문에 채소나 고기 조각이 착 붙어, 씹을 때마다 고소하고 진한 풍미가 퍼지고, 파스타도 아주 쫄깃한 식감이에요. 그래서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스파게티보다 훨씬 묵직하고 리듬감 있는 식감을 느낄 수 있죠.
푸질리
‘코르크 따개’를 닮은 저의 최애 파스타 푸질리(Fusilli)도 빼놓을 수 없죠. 꼬불꼬불한 나선형 덕분에 소스를 환상적으로 끌어당기는 맛이 있는 면이에요. 특히 농도 짙은 바질 페스토, 고기 베이스 라구, 혹은 리코타와 시금치 같은 재료와도 잘 어울립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바질 페스토에 푸질리를 곁들여 간단하지만 향긋한 파스타 한 접시를 만들어낼 수 있답니다.
디탈리
마지막으로 디탈리(Ditali)는 아주 작고 동글동글한 튜브 모양으로, 대부분 수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스타에 파졸리처럼 겨울철 콩 수프나 미네스트로네 같은 이탈리아 전통 수프에 넣으면 국물과 파스타가 한데 어우러지며 든든한 한 끼가 됩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따뜻한 식사가 되죠.
결론
여러분이 파스타를 고를 때 소스부터 생각하는 건 이제 옛말입니다. 지금까지 대표적인 파스타 면 종류를 알아봤는데, 그럼 오늘은 면부터 골라볼까요? 면의 종류에 따라 식감이 달라지고, 음식의 분위기까지 바뀌는 것을 이제 느끼실 거예요. 때로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풍성한 라구 파스타를, 때로는 이탈리아 엄마의 손맛처럼 정감 있는 포모도로 스파게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입맛에 맞는 파스타 면을 찾아내는 그 재미일지도 몰라요. 파스타는 결국 면발에서 시작됩니다.